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. 


이십년 전 쯤 읽은 디킨슨 원작을 완전 싫어하는 관계로 매우 걱정하면서 갔는데 의외로 괜찮았다. (싫어해서 그 이후로 읽지 않음. 과거에 싫어했던 소설들을 쭉 싫어하는 이유는 기회를 주지 않아서인가, 철이 안 들어서인가, 그저 개인의 취향인가)

물론 원작에서 따온 마지막 부분은 여전히 짜증난다. 이십년 후에 다시 영화든, 소설이든 보면 괜찮으려나... 칼튼이 삶을 포기하는 방식도, 작가가 이를 그리는 관점도-심지어 기독교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- 나와는 안 맞는다. 개인의 자유의지에 관한 논의의 진정성 면에서 사뭇 가벼운 작가의 관점-뭔가 베르테르적인-을 드러내는 것 같은 불쾌감이 있다. 게다가 결과불문 변질된 에로스가 왜 아름다운가?

(나를 보고 마치 해가 뜨는 것을 본 것처럼, 그리고 해가 뜨는 것처럼 미소짓는 남자의 표정에 드러나는 에로스의 순수함은 미칠듯이 아름다운 것이다. 그런 아름다움이 변질되서 파리한 종국적 희생으로 바뀌는 건데)

뭐 디킨슨은 오래 전 사람이고 그는 명작이 아니고 히트작을 쓴 거니까... 1990년대의, 부지깽이 같은 모던함(우리 세대는 현실을 박박 긁어잡고 매달려 흙장난 치는 게 즐거운 아이들이다)에 기초한 나의 이런 오바는 부당하겠지.

그래도 칼튼(한지상)이 캐릭터를 무척 잘 살려서 재미있게 보았다.  

무대표현이 좋았고, 배우들 노래나 여러가지 측면에서 공들여 만든 뮤지컬이다. 

흐릿하게 나왔지만 딱 사진과 비슷한 프랑스 뮤지컬 분위기가 난다. 

인터미션까지 3시간 잡아야 하지만 진행속도가 느리다는 생각은 안 든다.

'꽃보다 아름다운 일상 > 책. 영화. 공연. 인간의 향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태양의 서커스, 퀴담  (0) 2015.10.25
마션  (0) 2015.10.13
내 작품!  (0) 2014.06.02
유희열의 스케치북  (0) 2014.06.02
푸에르자 부르타  (0) 2013.10.25